32조+100조+9조 등 대부분 금융사 자금, 정부지출 20% 이하항공·자동차 기간산업 '휘청'…미온적 대책에 대량실직 우려영세자영업자 대출자금 '바닥'…재정당국 곳간 지키기 '급급'
  • ▲ 텅빈 인천국제공항ⓒ권창회 사진기자
    ▲ 텅빈 인천국제공항ⓒ권창회 사진기자
    정부가 연일 코로나19 경제대책이라며 수백조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물경제에서의 활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150조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라는 그동안의 대책을 뜯어보면 실질적인 정부재정 지원은 20조원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아직 집행이 시작되지 않았거나 방역 및 검역에 쏟아부은 돈도 작지 않아 실질적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9일 4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총 150조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단계적으로 마련해 시행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생의 근간인 사람과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가 말하는 150조원 규모는 지난달 4일 코로나 1차 추경(11.7조)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확정한 3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대책과 지난달 24일 발표한 100조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그리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위한 2차 추경 9조1000억원 등을 더한 수치다.

    하지만 정부가 자랑하는 150조원 대책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정부재정지출은 20%도 채 되지 않는다.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패키지 정책에 들어있는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 30조원은 금융회사들이 출자한 돈이며, 1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도 대부분 시중은행 자금이다.

    때문에 정부가 직접 마련한 재원은 시행 한달여만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외 상당수 대책은 총선과 맞물리면서 아직 집행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경제·산업 현장의 어려움은 더욱 무거워지는 모습이다.

    대규모 실직자 거리 나앉을판…기간산업 정부지원 태부족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자동차·조선 등 주요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미온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며 100조원 규모의 긴급자금 투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100조원 긴급자금은 대부분 당장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기업에 대한 금융(대출)지원이어서 실질적인 정부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빗발친다. 돈을 빌려서 벗어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장 타격이 큰 항공업계의 경우 보유 여객기 90% 가량이 공항에 세워진 상태다.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올해 항공 여객 수입은 전년 대비 38% 급감할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들은 2월부터 순환 휴직제를 도입했고, 사태가 계속될 경우 대규모 해직 사태도 예고하고 있다.

    수출절벽에 자동차 산업도 휘청거리고 있다. 기아차는 경기도 광명 소하리 공장 2곳과 광주 공장을 1주일간 생산 중단을 검토 중이며, 현대차는 해외 생산공장 중단은 물론 13일부터 울산공장 2라인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
  • ▲ 텅빈 인천국제공항ⓒ권창회 사진기자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주요 경제위기와 현재 위기의 차이점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교역은 6%p 이상 감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세계경제의 공급 및 수요 양 부문에 동시에 충격이 발생함에 따라 이번 위기가 세계무역에 미치는 파장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한 강도(强度)로, 더 장기간 지속될 수 있으므로 세계교역량 증가율 감소는 6%p 이상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자영업자 대출 바닥 드러나… 고용지표에 안잡히는 생계절벽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더 절박하다. 정부와 금융권이 공급 중인 긴급대출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추가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특히 이들 소상공인은 고용보험 등 사회적 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많아 생계절벽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발표한 1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안을 살펴보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 소상공인을 위한 2조7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진흥기금과 4~6등급 중신용자 대출 5조8000억원, 1~3등급 대상의 3조5000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상황이 좋지 않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은 소상공인진흥공단을 앞세운 정부가 맡고 있는데, 규모는 가장 적다.

    지난달 말 신청을 받기 시작한 2조7000억원 자금은 빠르게 소진돼 1조7000억원이 승인됐다. 여기에 지역신용보증재단에 기제출된 심사물량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한달도 채 되지 않아 기금이 모두 바닥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수요가 넘치는 저신용자 긴급 대출 자금을 기업은행이 주관하는 중신용자 자금 5조8000억원으로 이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

    특히 중신용자 대출은 대출기간이 짧고 연 1.5% 수준의 초저금리 적용기간도 불리하다. 또 담보나 신용이 낮은 저신용자들에게 문턱도 높아 실제 이관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저신용 소상공인의 파산 혹은 폐업은 고용보험 같은 사회적 기금 혜택에도 취약하다는 점이다. 600만 자영업자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2만2529명(2019년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정부재정지원, 곳간 지키는데 '급급'

    정부의 취약한 코로나19 대책에는 곳간을 지키는데 급급한 재정당국의 반발이 강하기 때문이다.

    4월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1월과 2월 국세 수입은 각각 6000억원, 1조8000억원 감소했다. 부동산거래 증가로 소득세 수입은 1조2000억원이 늘었지만 법인세(-6000억원), 부가가치세(-2조2000억원) 등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세수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1차 추경으로 발행한 10조3000억원의 적자국채만으로도 올해 관리재정적자 비율은 1998년 IMF 당시인 -4.7%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위한 2차 추경 재원 마련에 대해서도 "국채발행은 더이상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국이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좀더 적극적인 재정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코로나19 발병 이후 정부 재정지출은 GDP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각각 GDP의 6.3%, 1.8%, 1.8%, 4.4%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로 집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8조 4,000억 원의 추경예산을 통해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 미칠 충격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